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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상수 국회의원, 자유한국당 내년 전당대회 당 대표 누구?

최성룡기자 | 기사입력 2018/12/17 [11:02]

'안상수 국회의원, 자유한국당 내년 전당대회 당 대표 누구?

최성룡기자 | 입력 : 2018/12/17 [11:02]

▲ 트럼프와 안상수 ...     © 편집국

 

▲ '안상수 국회의원, 자유한국당 내년 전당대회 당 대표 도전     © 편집국


안상수  내년 전당대회 당대표 나간다!
"국토개조하여 300만개 일자리창출" 가능하다.

 

친구인 사조그룹 회장 주진우는 안상수 의원을  '인생박사'라 부르고, 중앙일보 홍석현 회장은 나에게 '독사'라는 별명을 붙여 주었다.

 

충청도 태안 갯마을에서 태어난 안상수가 가난과 온갖 역경을 극복하며 포기를 모르는 승부사라는 것이다. 초등학교 때 인천으로 유학생활을 와서 인천중학교, 경기고등학교를 거쳐 서울대학교 사범대학을 졸업했다. 서울대 대학원과 미국 트로이주립대학에서 각각 경영학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연세대학교에서 행정학 명예박사를 수여받았다.

 

1970년대 말 벤처기업의 시초인 계체산업의 초창기 주요멤버가 되어 재벌 기업의 질시의 눈초리를 받을 만큼 비약적인 도약을 경험하였다.1981년 당시 대기업으로 도약한 동양그룹에 스카우트되어 본격적인 샐러리맨으로 직장생활을 시작했다. 승진을 거듭해서 동양선물 미국 시카고 현지법인 대표이사로 활동하면서 뉴욕과 런던 등 국제금융 실물경제를 몸에 익혔다. 이후 40대 중반에 동양그룹 기획조정실 사장을 마지막으로 20여 년간의 기업생활을 마무리했다.

 

당시 대기업 최연소로발탁된 기조실 사장으로 실물경제도 몸소 경험했다.

 

1996년 전문경영인 케이스로 집권여당인 신한국당에 영입되어 인천 계양·강화갑에 공천된 후 9번의 선거를 경험하며 5번 당선되고 4번이나 낙선한 경험이 있다.1999년 보궐선거에서 당선되어 의정활동을 하였으며, 2002년 인천광역시장에 당선되어 이후 8년간 창조적 경영기법을 도입하여 인천의 르네상스시대를 열어 오늘날 인천 30만 인구시대의 초석을 놓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2008년에는 오늘날 미국 대통령인 트럼프 회장을 방문하여 인천 투자 상담을 벌이며 깊은 교분을 쌓은 인연도 있다.2015년 인천·서구·강화을 보궐 선거를 통해 국회에 재입성하였고,2016년에는 새누리당 패권세력에 의해 공천将을 겪었지만 인천·중구·동구·강화·옹진에서 무소속으로 당선되어 경륜과 비전을 겸비한 3선의원으로 다시 우뚝 서게 돠었다、20여 년의 정치생활 속에서초지일관 정당을 바꾸지 않은 지조의 정치인이며 북한의 초청을 받아 두 번이나 북측 고위층과 접촉한 경험을 가지고 있다.

 

안의원은 실물경제인 출신으로 가계부채 해결론, 일자리 창출론을 주창하여 많은 조명을 받고 있으며,지역구인 강화지역의 약 275만평 농지를 개조하여 10만 명 이상의 일자리가 창출되는 휴먼 메디시티 건설과 앙종강화 간 연륙교 건설을 추진하고 있다.주요 저서로는 《선물거래 실무(1992)><국제금융선물거래(1998)(뉴욕은 블룸버그를 선택했다(2001)><안상수의 흔이 담긴 이야기(2012)><아, 인천(2013) (일자리 대통령(2017)> 둥이 있다.

 

안상수 국회의원은 자유한국당 대선 경선때 '일자리 대통령' 국토개조하여 300만개 '일자리창출'을 하겠다'고 밝힌적이 있다.청년실업자가 늘어난 현실에서 반가운 일이 아닐수가 없었다. '경상도신문'필자는 '자유한국당 안상수 국회예결위원장'을 만난 자리에 그는 이렇게 말했다.

 

▲ 국회 예결위원장 안\상수 의원..     © 편집국

 

■ 정치입문

 

'안상수 의원'은 동양그룹 종합조정실 사장을 역임하면서 실물경제에 대한  경험을 쌓았다. 그리고 그는 1996년 15대 총선을 앞두고, 김영삼 대통령과 한나라당의 경영 전문가 영입 대상으로 정치에 입문을 하게 된다.충남태안 출신으로, 어린 시절을 보낸 인천(계양)을 연고로 첫 정치에 입문하여 출마했으나, 낙선의 고배를 마셨다.

 

정치인으로 실패와 성공

 

그의 정치이력은 결코 순탄치 않았다. 아홉 번 출마해, 네 번을 낙선했다. 수도권에서 어려운 선거를 치루며 성장해 온 정치인인 만큼, 정치를 보는 안목이 탁월하다. 


안상수 의원은 “신념 있게 행동하면, 신뢰를 얻는다”고 말한다. 김대중 대통령이 당선된 직후 치른 1998년 인천광역시장 선거! 낙선이 뻔한 상황에 그 누구도 나서지 않았다. 당의 재건를 위해 후보가 되겠다고 했고, 비록 낙선했지만, 선전했다. 이런 신념있는 행동이 당원들에게 각인되어, 2002년 인천광역시장 당내 경선에서 극적인 승리를 했고, 인천광역시장 당선으로 이어졌다. 또한, 지난 20대 총선에서 당을 사유화하려는 세력에 의해 공천을 받지 못해 무소속으로 나섰지만, 당원들과 주민들의 지지를 받아 당선되는 기적을 이뤄냈고, 약속대로 즉시 당에 재입당했다. 

 

위기에 강한 정치인, 당 개혁에 앞장 서다.

 

1999년 15대 국회의원 재보궐선거에서 당시 이회창 총재와 함께 DJP 연합후보들에 맞서 승리를 이끌어 내면서 김대중 정권에 균열을 냈고, 인천광역시장 8년 동안 김대중, 노무현 정부의 갖은 회유에도 당을 지켜내며, 송도국제도시, 인천대교를 건설해 인천발전의 초석을 다졌다.또한, 박근혜 대통령 탄핵 후, 계파갈등으로 당이 위기에 처했을 때, 전국위원회 의장으로 당 개혁을 주도했으며, 올해는 지방선거 패배로 홍준표 대표 사퇴 후, 당이 혼란에 빠지자, 비상대책위 준비위원장을 맡아 당내외의 다양한 의견들을 무난히 조율하고, 김병준 비상대책위원장 체제가 안착될 수 있도록 앞장 섰다.

 

좌파광풍에 맞서 싸울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하다.

 

안상수 의원은 문재인 정부의 좌파광풍으로 이념대립이 극렬화되고 경제불안이 가중되면서 대한민국이 침몰하고 있다고 진단한다. 자유한국당이 문재인 정권에 맞서 싸워야 한다. 2월에 열릴 전당대회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당의 화합을 이끌어내고, 문재인 정권과 제대로 싸울 수 있는 지도부가 필요하다고 믿는다. 그래서, 내년 전당대회에 나서는 것을 진지하게 검토하고 있다.

 

안상수 의원의 정치이력을 보면 당이 위기에 처했을 때마다 앞장 서서 당을 지켰고, 당 화합과 개혁을 주도해왔다. 또한, 이번에 국회예결위원장을 맡아 문재인 정부의 현금살포형 퍼주기 등 낭비성 예산을 삭감하고, 일자리를 만드는 SOC 예산, 기업에 활력을 높일 수 있는 R&D 예산 등, 대한민국을 살릴 수 있는 예산 증액에 힘썼다.

 

특히, 자유한국당의 교두보라고 할 수 있는 영남권에 사상최대 SOC 예산을 배정토록 하여 어려운 경제에 활력을 살리고 일자리를 늘릴 수 있도록 했다.

 

1970년대 말 벤처기업의 시초인 계체산업의 초창기 주요멤버가 되어 재벌 기업의 질시의 눈초리를 받을 만큼 비약적인 도약을 경험하였다.1981년 당시 대기업으로 도약한 동양그룹에 스카우트되어 본격적인 샐러리맨으로 직장생활을 시작했다. 승진을 거듭해서 동양선물 미국 시카고 현지법인 대표이사로 활동하면서 뉴욕과 런던 등 국제금융 실물 경제를 몸에 익혔다. 이후 40대 중반에 동양그룹 기획조정실 사장을 마지막으로 20여 년간의 기업생활을 마무리했다. 당시 대기업 최연소로 발탁된 기조실 사장이었다.

 

이시대 보수가.나아가야 할 가차는 분명하다.이승만 대통령이 국시(國是)로碍운 자유민주주익 박정희 대통령의 산업화, 감영삼·김대중 대통령의 민주화, 이 세 가자가 보수가아가야 할 이 시대의 가치라고 강조하는 안상수 의원 그는 대한민국을 공산화의 위기로부터 구해준 마국과의 한미동맹이 우리의 실용적 외교노선이라며 자신은 실물경제를 몸에 익숙하왔고, 8년간 창조적으로 인천광역시를 경양해 본 사람이다,

 

여기에  3선 의원으로서 국정에 참여하여 국가의 비전을 세운 사람이다.트럼프 대통령이-공허한 말의 순간은 끝났고, 행동의 시간이 왔다'고 선언한 것처럼, 자신은  말을 앞噚우는 사람에 맞서 실천을 중시하는 정치인이 될 것이라고 호언했다.또한  언어의 수사에 메달라는 것이 아니라,열정으로 행동하여 국민들에게 행복을 선사하는 정치인이 될 것이다.라고 말한다.

 

안상수의원은 한국당을 개혁하고 국민들의 욕구에 부응하는 정치의 길을 가려 하는것은 "이 시대의 정신인 중도통합과 실용의 길"이라며 자신이 평생을 추구한 보수의 가치라고 덧붇혔다.그리고 이 시대의 가장 절실한 국가 문제, 일자리 창출에 그동안 자신이 축적해온 철학과 경험을 모두 쏟아붓고 싶다.고 밝힌다.그것이 자신을 지지하고 성원해 준 국민들에게 마지막으로 봉사하는 길이라고 믿어왔다.

 

안의원은  대한민국의 국토를 개조하여 송도국제도시와 같은 융·복합도시의 건설로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하는 것이 이치에 맞다고 생각한다.그래서 그는 그 도시를 일자리도사라고 부르고 싶다. 혹자는 물을 것이다. 땅이어디 있어서 그런 일을 한단 말인가 나는 농지를 활용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쌀 과잉생산 문제와 일자리 문제를 동시에 해결할 수 있다농지를 도시의 부지로 전용하므로 조성원가가 저렴할 것은 당연하다바다를 매립해 조성한 송도국제도시보다 그 원가가 저렴하다.

 

그 땅에 산업화 위주의 계획도시, 융·복합의 자족도시 일자리도시를 건설한다.여기에 도시의 70%는 산업단지로 건설하고, 30%는 주거단지로 조성한다. 산업단자는 기업 육성을 최우선으로 하여 일정 기간 무상 임대할 수 있다.또 주거단지도 최대한 저렴하게 조성하여 근로자의 삶을 뒷받침한다. 그렇게 하면 순차적으로 건설되는 다섯 개 일자리도시에 약 200만 명의 새로운 일자리가 창출될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한편 안상수 국회의원'은 3선의원으로서  내년 '자유한국당'대선예비후보에 배수진을 치고 다양한 공약을 발표하는 등 발빠른 행보를 보이고 있다.하지만  '자유한국당 거물급 대선 후보들이 용트림 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점을 어떻게 풀어 부각시켜 나갈지 그는 지금 고민하고 숙제중이다.국회/최성룡기자

정론직필의 자세로 임한다.
시사코리아뉴스 회장 최성룡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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