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코리아뉴스]최성룡기자 = 창원의 안민고개는 임진왜란때 왜군의 전략적 주둔지이자 왜적의 소굴인 안골포와 웅천현에서 창원을 관통하여 한양으로 진입할 수 있는 유일한 관문이었다.
1593년 (선조 26) 9월 하순경 김해에 있던 왜장이 거느리는 군사와 안민고개에서 전투가 벌어졌다. 이때 고성의 의병장 최강 장군을 필두로 우측에는 고성의 의병장 이달장군, 좌측에는 함안의 안신갑 장군이 수많은 의병들과 함께 안민령 전투에 급파되어 종횡무진 적진을 피로 물들이게 하고 대승을 거두었고, 후일 육전 승리사로 유명한 안민령전투로 명명되었다고 한다.
또한 백성을 편안하게 지낼수 있게 하였다하여 안민이란 지명이 내려졌고, 선조임금은 정충보국과 충의정신을 높이 치하하여 창원 도호부를 창원대 도호부로 승격 시켜주었다한다. 그럼 세분 의병 장군들의 면면을 살펴보도록 하자.
최강장군(1559~1614) 의 숙공.본관은 전주최씨. 경남 고성에서 의병을 일으켜, 진주, 웅천, 진해에서 공을 세워, 오위도 총부경력이 되고 가리포 첨절제사에 승진하여 왜적을 무찔러 순천부사, 경상좌도수군 절도사, 포도대장에 임명하기도 하였다.
이달장군(1561~1618) 조선중기,임진왜란 선무원종 공신 고성의 의병장으로, 호는 운포, 본관을 함안이씨, 의병장, 곽재우, 최강, 최균 등과 왜적에게 포위된 진주성 방어전에 전공을 세워 훈련원장에 특임되셨다.
이달장군 어머니는 전주최씨 어머니의 사촌 형제가 최강, 최균 장군이셨고, 이달장군과는 외 오촌아제가 되고 종생질이였다.
필자는 세분의 의병장들께서 나라의 위급사태를 막아내고, 창원시민의 목숨을 구한 충의정신을 후손들이 이어받을수 있도록 조속히 소공원을 조성하고 의병승전비를 세워 구국정신의 역사적 현장이 되기를 바라면서, 창원시정을 책임지고 있는 두분께 건의한 바 있었다. 그렇다면 창원시민은 과연 육전 승전사 안민령 전투를 알고나 있을까?
창원시청 로타리에서 도청으로 향하는 곳에 최윤덕 장군의 동상이 호화스럽게 세워져 있는 것을 보지 않았던가? 이달장군의 13대 후손으로써 때늦은감이 있지만은 철저한 역사적 고증을 통하여 안민령전투 승전비 건립은 물론 작년에 추진위원회에서 개최한 의병문화재 행사를 공식화하기를 제안하는 바이다.
풍전등화 같은 우리나라의 어려운 난국을 이순신장군은 바다에서, 세 장군은 육지에서 전공을 세운 당대의 영웅들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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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코리아뉴스 회장 최성룡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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