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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훈 국회의원 당선 소감

최성룡기자 | 기사입력 2020/04/16 [21:33]

설훈 국회의원 당선 소감

최성룡기자 | 입력 : 2020/04/16 [21:33]

 

▲ 당선 원하는 주권자의 위대한 승리입니다. 부소감문존경하는 부천시민 여러분 고맙습니다.    © 편집국



당선 소감문

 

존경하는 부천시민 여러분

고맙습니다. 깊이 감사드립니다.

 

오늘의 승리는 저 설훈의 승리가 아닙니다.

부천의 가치와 내일을 선택한 부천 시민들의 승리입니다.

 

국민의 건강과 안전을 지켜내는

세계 속 당당한 대한민국을 원하는

주권자의 위대한 승리입니다.

 

부천의 내일을 위해 함께 경쟁해주신

야당 후보님들께 깊은 위로의 말씀을 드립니다.

수고 많으셨습니다.

 

사랑하는 부천시민 여러분

지난 선거운동 기간 부천의 구석구석에서 만난

시민들께서 주신 말씀 깊이 새기겠습니다.

 

부천의 가치를 높여 쾌적하고 살기 좋은 부천을 만들라는

시민의 명령, 받들겠습니다.

시민들께 드린 약속 반드시 지키겠습니다.

 

싸우지 말고 일하는 국회를 만들어

민생과 경제를 챙기라는 국민의 명령, 받들겠습니다.

 

집권여당의 중진의원으로서

민주당을 중심에서 이끌고, 문재인 정부의 국정을 안정적으로 뒷받침하겠습니다.

 

함께 코로나 위기를 극복하고, 국민을 지키겠습니다.

코로나 위기를 기회로 만들어

더불어 함께사는 세상, 모두를 위한 정의로운 나라의 길로

국민을 믿고 당당하게 걸어나가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설훈을 만든 인생의 장면들  © 편집국

 

설훈을 만든 인생의 장면들

     

독립운동가 아버지와 민주화운동가 아들

 

설훈은 독립운동가 설철수 옹의 아들이다. 일제 강점기 때 교사로 재직한 설철수 옹은 제자들에게 우리 역사와 한글을 가르치다 25세 때 일본 경찰에 체포돼 옥고를 치렀다.

 

설훈은 독립운동가 아버지가 지키려 한 민족정기와 올곧은 성품을 자양분으로 삼아 바르게 성장해 나갔다. 74년 고려대 사학과에 입학한 설훈은 박정희 유신독재의 그늘을 외면할 수 없었다. 20대 청춘을 민주화를 위해 바쳤다. 민주주의와 청춘을 바꾼 설훈은 박정희 유신독재 반대 투쟁을 주도해 꿈 많은 20대에 세 차례나 옥살이를 했다.

 

25살 독립운동가 설철수는 일제에 항거해 민족정기를 지키다 투옥됐고, 25살 민주화운동가 설훈은 독재에 저항하다 투옥됐다.

      

2. 행동하는 양심 김대중이 알아 본 설훈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군사법정, 김대중 선생에게 사형이 선고됐다. 그 순간 , 이 똥별들아!”라는 청년의 외침이 터져나왔다. 목숨이 오가는 서슬퍼런 군사법정의 권위에 눌려 누구도 저항하지 못할 때, 한 청년이 불의를 참지 못하고 장성급 재판관들을 향해 외친 것이다.

 

바로 설훈이었다. 설훈은 김대중 내란사건 학생 시위 주도 혐의로 세 번째 구속돼 재판을 받던 중이었다. 설훈은 징역 7년을 선고받고 26개월 복역 후 김대중 선생과 함께 형집행정지로 석방됐다. 설훈의 정의감과 기개를 눈여겨 본 김대중 선생은 그를 수소문해 비서로 두게 된다. 행동하는 양심과 설훈이 한 길을 걷기 시작한 순간이었다.

     

3. 노무현 대통령 당선의 숨은 공신, 그리고 탄핵 반대

 

설훈은 헌정 사상 최초로 상향식 공천을 제시해 정당 민주화의 단초를 마련했으며, 이것이 국민경선제 도입으로 이어져 2002년 대선 후보 경선에서 노무현 후보가 당선될 수 있는 기반이 됐다.

 

2004년 노무현 대통령 탄핵이라는 초유의 사태 앞에서는 삭발로 저항했고, 17대 총선 불출마까지 선언했다. 19·20대에서 국민의 선택을 받은 설훈은 4선 중진, 집권여당 최고위원이 돼 국정의 한 축을 책임지고 있다.

 

4. 전셋집 전전하는 형편에도 사익을 챙길 줄 몰랐던 설훈

 

1993년은 설훈에게 필생의 불운이 닥친 해였다. 사하구 국회의원 보궐선거 지원차 부산에 내려와 있던 설훈에게 비보가 들려왔다. 초등학교 1학년이던 딸이 교통사고로 그 자리에서 목숨을 잃은 것이다. 그 와중에 그가 내린 결정은 범인은 도저히 따라가기 힘든 것이었다. 장례 때 들어온 부의금 전액을 부모로서 취할 게 아니라며 딸이 다니던 초등학교에 장학금으로 기부한 것이다.

 

1998년 광주민주화유공자 보상금으로 받은 12천여만 원 역시 광주민주화항쟁으로 고통받은 호남지역의 인재를 키워달라는 소망을 담아 전남 담양 한빛고등학교에 모두 기부했다. 평생 사익이라곤 챙길 줄 모르니, 그때에도 그는 전셋집을 전전하는 상황이었다.

 

5. 동교동 막내에서 김대중과 노무현을 지키고, 문재인과 함께하다

 

군부독재에 맞선 청년 설훈은 김대중 대통령의 동교동 시절 비서로 정치에 입문했다. IMF 외환위기를 빠르게 극복해내고 행동하는 양심을 강조한 김대중 대통령을 지켰고, 참여민주주의의 뿌리를 내린 노무현 대통령 탄핵에 저항하며 노무현을 지켰다.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으로 집권 여당 지도부에서 중심을 잡고 있는 그는 검찰공정수사촉구특위 위원장을 맡아 검찰개혁에 앞장서는 등 문재인 정부의 국정운영을 뒷받침하며 국민이 원하는 개혁과제 완수를 위해 애써왔다.

      

6. 부천의 가치를 높일 든든한 힘! 설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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