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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가 탐방‘곡우 진종만 선생’] 魂‘으로 빚은 ‘백자 국화당초문 대호' 도예작품 속으로!

편집국 | 기사입력 2015/02/01 [17:35]

[예술가 탐방‘곡우 진종만 선생’] 魂‘으로 빚은 ‘백자 국화당초문 대호' 도예작품 속으로!

편집국 | 입력 : 2015/02/01 [17:35]
▲ 사진은:곡우 진종만 선생....    © 편집국
“곡우 진종만 선생 도예전시관”
경남 창원시 마산합포구 합포동 3길2
문의전화:055-224-7900
 
[시사코리아뉴스]조완희기자 = 지역사회의 문화 창달과 전통도예의 계승발전을 위해 개관한 “곡우 진종만도예관‘이 그동안 상설 전시관으로 운영한지 올해로 14주년이 됐다.
 
▲     ©편집국

‘곡우 진종만 선생’은 고령의 나이에도 얼마 전까지 작품제작을 하시는 모습은 비록 기력은 다소 쇠하였는지 모르나 그 열정은 아직식지 않았음을 나타낸다.이 모습을 지켜보는 젊은 후배 예술가들에게는 크나큰 귀감이 되고 있다.
 
"할 수 있을 때 최선을 다하자"라는 것을 생활 철학을 좌우명으로 삼고 주워진 현실 속에서 작품 활동에 진념을 불태운 ‘곡우 진종만 도예가’ 조선의 도공 후예답게 선생은 늘 침착한 성품에 빈틈없는 체계적인 사고와 함께 늘 창의적인 작품세계로 몰입하며 혼(魂)을 담은 작품을 늘 추구해 왔다.
 
▲     © 편집국
‘곡우 선생’은 지난1968년 제3회 대한민국 예술교육문화상(공작부문)최고상을 수상을 시작으로 수많은 수상 경력과 2011년 주한미군사령부 굿데이버상을 수상하였으며 특히 2000년건교부.관광상품,장려 공모전에서 “충무공 이순신조형,을 출품”하여 입상하기도 했다.
 
지금 곡우 선생님은 노병으로 힘든 나날을 하루하루 지탱하고 있다.이 때문에 작품 활동을 왕성하게 하지 못하는 안타까운 처지에 놓여 보는 이들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있다.특히 곡우 도예가의 아름다움의 백자,청자등 다양한 도자기의 작품들이 맥이 끊어질 단계에 이르렀다.
▲     © 편집국
 대한민국 수도서울 광화문에 세종대왕 동상을 제작한 조각가 김영원씨를 비롯한 훌륭한 제자를 비롯하여 전국에 수 많은 제자들을 배출시키면서 이 들이 빚어내는 작품의 세계는 문화유산으로 우리 겨레의 삶의 예지와 숨결 들어 있는 소중한 보배와 보물이자 인류문화의 자산으로 역사에 남을 것이다.
 
또,이들이 빗어 내는 작품들은 먼 훗날 역사에 남을 소중한 보배들로서 “유형의 문화체제와 함께 무형의 문화재”모두는 민족문화의 정수이며 그 기반이 되며 더욱이 우리의 문화유산은 오랜 역사 속에서 많은 재난을 견디어 오늘에 이르고 있기 때문이다.
 
▲   월주 스승의 그림 ...  © 편집국
이런 맥락에서 문화유산을 알고 찾고 가꾸는 일은 곧 나라 사랑의 근본이 되며 겨레 사랑의 바탕이 되기 때문이다.특히 문화유산은 한번 손상되면 다시는 원상태로 돌이킬 수 없으므로 선조들이 우리에게 물려준 그대로 우리도 후손에게 온전하게 물려주어야 함이 마땅할 것이다.
 
곡우 선생은 자신의 땀 자신의 작품세계 자신의 인생에서 도자기를 빼면 과연 무엇이 남을까.자신은 흙을 빚어 예술작품을 만드는 사람이자 조선의 도공의 후예로써 흙 속에 자신의 영혼(永魂)을 불어 넣고 불 속에서 한 점의 도자기를 완성하는 일을 평생의 업으로 삼고 살아왔다.고 말한다.
▲     © 편집국
지난 1931년 김해시 진례면 고모리에서 태어나 창원에서 성장하면서 어깨너머로 옹기를 배웠다.그렇게 배운 실력으로 일제시대인 1942년 소학교 2학년 때 세계아동미술전람회에서 목화 따는 여인을 찰흙으로 만들어 옹기 촌에서 구워낸 작품을 출품했는데 조선인으로서는 유일하게 12살의 어린 내가 출품한 옹기가 입상하면서 인생의 진로가 결정된 것이다.
 
이후 도예의 길에 들어선 선생은 60년대 후반부터 지금까지 30회가 넘는 개인전과 일본 초대전을 여러 차례 열었다.특히 마산에서는 해마다 '가고파 국화축제'가 열리면서 이를 기념하기 위한 도예전과 함께 매년"곡우 진종만 도예관"에서 ‘도예품 전시회’를 갖는다.
 
▲     © 편집국
지난해까지 13번째로 개최한 ‘도예품 전시회’는 곡우 선생의 전 작품들이 전시된다.특히 도예관 중앙홀에는 백자 봉황문 항아리 와 용문양 백자 당초문 접시등 200여점의 화려한 색상 과 각종 꽃문양 짐승문양등이 수 놓여 있는 다양한 작품들이 관객의 눈낄을 끌었다.
 
도예 작품속에는 계절과도 많은 연관을 두고 있는 것 같다. 가을이 온 걸 입추(立秋)에는 하늘이 알고 처서(處暑)에는 땅이 알며 백로(白露)에는 사람이 안다고 했다.해는 짧아져서 밤낮이 갖은 추분(秋分)을 지나 찬이슬이 맺힌다는 한로(寒露)에 서리가 내리는 상강(霜降)을 막 지났다.
 
예로부터 10월26일(음력9월9일)중구(重九)일을 우리 선조들은 한해 가장 양기(陽氣)가 충만한 길일(吉日)로 여거 중양절(重陽節)이라고 불렀다.
 
이때면 조상에게 햇곡식과 과일을 올리는 천신제(薦新際)의 의미도 있다.또한 중양절은 기러기가 돌아오고 국화가 피는 국화의계절로 국화전을 해먹고 국화술을 빚었으며 국화차를 만들어 마시기도 했다.
 
▲     © 편집국
매년 국화 축제와 함께 열리는 도예전은 ‘한국 도자기’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는 ‘진해 미 해군 위던사령관 과 부사령관’ 그리고 직원들이 해마다 참여를 하면서 작품을 통해 양국의 우의를 더욱 돈독히 하고 있다.
 
특히 ‘위던 진해 미해군 사령관’은 곡우 진종만 선생님의 훌륭한 도예가 미고문단에도 지원하여 주어 한.미 관계가 더욱 돈독해졌다며 건강한 작품활동에 격려를 아끼지 않고 있다.
 
‘곡우 진종만선생후원회’자문위원을 맏고 있는 몽고식품그룹 김만식 회장은 지난해 역시 가고파 국화축제를 기념하는 “곡우 진종만 도예전” 더 많은 작품들과 왕성한 젊은시설 빚어낸 작품들이 상설로 전시되어 있어 아름다운 백자의 미를 감상할 수 있는 더 할나이없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라고 시민들의 많은 참관을 당부하기도 했다.
 
▲     © 편집국
곡우 선생은 미술교사 출신이다.55년 창원시 도립 창덕중학교 미술교사로첫 발을 내디딘 이후 77년까지 교사생활을 하는 동안 자신은 오로지 공작시범학교에서 미술도예만 전념해 왔다.
 
곡우 선생이 본격적인 도자기 입문은 월주 원덕문 선생을 만나면서이다.1948년부터 55년까지 인간문화재 48호 월주 원덕문 선생에게 사사해 지금까지 60년째 오로지 조선백자 재현의 외길을 걸어가고 있다.조선도공의 후예다.
 
자신은 늘 혼자만의 세계를 만들어 온것은 아니다.고 말한다. 후진양성에도 힘을 기울였다.선생에게 지도를 받아온 제자만 해도 홍익대 미대 조각과 김영원 교수를 비롯해 한국교원대 이성도 교수, 무형문화재 48호 단 청장 조교, 김용우, 성낙우, 창원전문대 교수 등 많은 사람들이 곳곳에서 조상의 숨결을 재현하며 작품 활동과 후진 양성이라는 소임을 다하고 있다.
▲     © 편집국
곡우 선생은 지난 2002년 7월30일 마산시 산호2동 337의 80번지 문화 빌딩 6층에 나의 작품을 이제 상설 전시회도 상설 전시하는 곡우도예전시관을 열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전시실에는 선생이 빚은 60여점의 도예작품을 전시해 놓고 있으며 일정기간을 두고 문양별로 새로운 작품으로 바꿔 교체 전시를 하지만 방문객들이 그림을 그려 넣을 수 있는 초벌 도자기 등이 전시실에 눈에 뛴다.
 
흙은 우리들의 고향이고 언젠가는 돌아가야 할 어머니의 땅이지만 흙은 나의 넋이고 불은나의 생명였다.이제 그 마지막 불이 서서히 꺼져가고 있는 그불을 누군가 맥을 이어가야 할 텐데 걱정이 앞선다.
 
곡우 진종만 선생은 조선의 얼마 남지 않은 도예가로 힘겨운 병마와 씨름하고 있다. 지난날 일본은 우리나라의 수 많은 도공들을 납치와 약탈했지만 우리의 문화재가 이곳에서 살아 숨 쉬고 있다."문학이나 예술은 인간의 영혼을 맑게 하고 이성을 향상시키는 것이 아니면 안 된다"자신은 이제 얼마남지 않은 여생을 변함없이 넋과 생명을 불살라 새로운 생명을 창조하는 성실한 도공의 자세로 살아가고자 한다.
▲     © 편집국
곡우谷牛 진종만陳鐘滿선생은 평소 즐겨 쓰는 말중에 "흙은 나의 넋이고,불은 나의 생명이다."라고 힘주워 말한다.곡우 선생의 작품들은 현대의 항금만능물질주의적 물신사상에 타락되어 탐욕으로 인해 이성이 병들고 이념 특론과 기존의 모랄을 파괴해 버리려는 사회 갈등을 담담하게 표현한 혼(魂)을 담은 도예작품들이다.
 
그동안 "곡우谷牛 진종만陳鐘滿선생'의 작품은 타를 초월할 작품들로서‘백자 국화 당초문 대호'를 시작으로 백자 용문 대호,백자 십장생문 대호,백자 까치호문 대호,백자 박쥐문 발,백자 용문 발,백자 어문 발,백자 신선문 대호,백자 학문 항아리,백자 어문 병,백자 박쥐문 병,백자 국화당초문 대호,백자 철사포도문 항아리,백자 진사포도문 대호,백자 항아리,백자 산수문 통병,백자 진사포도문 통병,백자 연화당초문 병,백자 박쥐 푼주,백자 매화문 병,백자 국화문 병,백자 해태문 항아리,백자 철사포도문 통병,정호 차사발,진사 결정 차사발,천목 차사발,금 결정 차사발,곡우 차사발,정호 차사발,백자 용문 발등 수 많은 작품들을 빚져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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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암행어사 2015/02/03 [14:46] 수정 | 삭제
  • 어르신 존경합니다 갖고싶은 백자가 많습니다 멋있습니다. 만수무강 하세요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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